느헤미야 1:1-11 기도하며 계획하며
기도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생명줄입니다.
이 기도가 끊겨지면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 몸에 피가 더 이상 돌지 않아서 죽어가는 사람 처럼…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명수가 끊겨졌을 때 우리는 생명력을 잃은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이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져서 우리는 생명이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흐르므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기도의 삶에서 어떻게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고국에서 들려온 참담한 소식을 들으며
느헤미야는 현실을 직시하며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1:3-4)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유대민족의 이민 2-3세로
페르시아의 높은 고위직에 있었지만
항상 자기 조국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에 가 있는 모스탄 대사의 경우에도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을 것 같지만
그는 한국을 너무나도 뜨겁게 사랑하며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려고 애써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무척 슬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인정하며
더 나아가서 자기가 속한 사회와 나라의 아픔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병든 자를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셨고,
굶주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같이 느헤미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결코 현실을 피하지 않으며
현실을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부르짖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도 비록 몸은 이곳 미국에 와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의 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6.3지방선거의 총체적인 문제들을 놓고 안타까워하며 고국을 위하여 기도하며
공의와 정의가 다시 세워지며 부정이 바로 잡아지게 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놓고 마음 아파하며 …
이 미국땅에서도 제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서 가도록
기도하며 도울 수 있으면 돕도록 해야 합니다.
“아휴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 하지 마세요!”
하시는 제 동료목사들도 있고 일반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정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개인 생활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와 국가까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질 때 침묵하지 않았던 선지자들처럼,
교회도 성경적 가치와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의 양심을 깨우고,
성도들이 성경적 기준으로 세상을 분별하도록 돕는 공동체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의와 사랑과 진리를 추구하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써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내어 놓을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하나님께 내어놓을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2. 처참한 현실을 바라보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느헤미야는 문제를 인식하고 하나님께 금식기도하며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처참한 소식을 들었을 때 인간적인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을 마음에 품고 썩히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고 통곡하며 다 쏟아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의 모든 염려와 아픔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토해내고 나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임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요 14:27)
우리가 부르짖으면서
우리안에 있는 모든 상처, 슬픔, 괴로움 이런 것들을
소리로 다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잠잠해지고 냉철해지게 되면서
하늘의 계시가 서서히 열립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 안의 염려를 하늘로 다 올려 보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안을 우리 마음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3. 평안한 마음이 오면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1:5, 10)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부르짖고 나서
이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보이기 시작하며
그 것을 가지고 감사찬양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신명기 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사망과 저주, 생명과 복을 뒤섞어서 우리 앞에 놓으셨습니다.
얼핏보면 사망과 저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캄캄한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향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아주 조그마한 솟아날 구멍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겁니다.
이렇게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의 이전에 베푸셨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감사할 것이 없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 밖에 없지만 부르짖으니까
예전에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이 생각이 나게되어서
감사하며 찬양하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던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생명이 보이고 복이 보이고 하나님이 크신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사망과 저주만 육신의 눈으로 보였지만
부르짖으므로 영이 깨어나기 시작하므로
부르짖기 전에는 안 보였던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나서 감사하며
아무것도 없었던 때에도 더 비참한 때였지만
우리 선조들을 먹이시고 재우시고 이끌어주신 은혜가 기억나서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부르짖고 기도하므로
이미 이전에 나의 삶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겁니다.
어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일을 주신 것,
오늘 새벽까지 베풀어 주신 좋은 일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은 건강을 주신 것,
가족을 지켜 주신 것,
먹을 양식을 주신 것,
구원을 주신 것…
이 모든 좋은 것들…
생명과 복을 찾아내어서 하나님께 감사찬양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감사는 생명과 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는…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다가오는 모든 저주와 사망을 밑으로 두고 공중으로 이륙하는 것입니다.
비록 폭풍가운데 있을지라도,
감사하는 영혼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주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파도 날 향해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니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주님안에 나 거하리
주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파도 날 향해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니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4. 그렇게 문제를 인식하고 부르짖고 감사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기도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하며 계획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마지막 기도에서 매우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이 느헤미야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 1:11)
여기서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이 아닥사스다왕은 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감동시켜서 도움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겁니다.
기도중에 받은 감동….
하나님의 해결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입에서 흘러나온 기도내용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 기도내용이 하나님의 음성이 되는 겁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여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기도중에 내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이며 하나님의 말씀인겁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고국 이스라엘나라의 성읍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여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며…
감사찬양을 하니까…
높이 높이 올라가서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므로
하나님의 감동적인 해결책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그 때부터 느헤미야는 이제 세밀한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도의 응답을 허락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아닥사스다왕을 만났을 때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부탁을 해야 하는 계획들을 세우는 겁니다.
과연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계획한대로…
느헤미야가 궁궐에 들어가서 왕을 섬길 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아닥사스다왕이
그 날 자기 앞에 나타난 느헤미야를 보니까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은데…
가만히 느헤미야 얼굴을 보니까…
느헤미야의 얼굴에 무언가 근심이 가득찬 것을 본 아닥사스다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자
즉시 하나님께 잠시 기도한 후 담대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나를 유다, 곧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느 2:5)
그리고 그는 기도할 때 세운 계획대로 구체적인 요청을 왕에게 했습니다.
첫째, 유다까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각 지방의 총독들에게 보낼 조서를 요청했습니다.
둘째, 성문과 성벽과 자신이 거할 집을 지을 목재를 얻기 위해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보내는 공문을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계획했고,
왕이 그에게 말을 걸며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
왕에게 세밀하게 자기가 기도중에 세운 계획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애통하며 부르짖었던 그 기도제목들이 다 이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도는 공중에 흩어지는 안개처럼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내용이 있다면,
옆에 노트를 준비해서 적으며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계획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며
그저 기도했다는 자기만족만 있을뿐입니다.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기도하다가 계획하면은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도 계획하셨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서 1:4)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도 하나님처럼
계획해야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침략하여
타작마당을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사무엘상 23:2)
그런데 다윗의 부하들이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사울의 추격을 피해 이렇게 우리 영토인 유다에서
이렇게 피해 다니는 것도 살얼음판 걷듯 두렵고 위태로운데,
어떻게 저 강한 블레셋 군대와 맞서 싸우러 최전방(그일라)으로 가겠다는 말입니까?”
그때 다윗은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계획을 세우고 행동했고,
결국 그일라를 구원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흘러서…
사울 왕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다윗을 잡으러 그일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미련 없이 그일라를 떠났습니다.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묻고 듣고 계획을 세우며 행동했습니다.
어제 미국은 독립 2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발표되었지만,
독립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해 1776년 겨울, 미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당시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미대륙군은 연전연패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지쳐 있었고, 많은 군인들은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미국 독립의 꿈마저 사라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쳤고,
병사들은 지치고 굶주려 있었으며,
강물에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장군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몇 척의 배가 필요한지,
어느 지점에서 강을 건널 것인지,
언제 출발해야 하는지,
어떤 경로로 진격할 것인지,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워싱턴 장군은 기도하고 계획하며
성탄절 밤, 얼음으로 뒤덮인 델라웨어 강을 건너 적진을 기습하기로 한 것입니다.
많은 장교들은 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1776년 12월 26일 새벽, 워싱턴 장군은 델라웨어 강을 건너 트렌턴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계 헤센 용병 부대를 기습했습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기습을 해서 미군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적군 약 900명을 포로로 잡았고, 대포와 군수품을 전리품으로 챙겼습니다.
반면 미군의 피해는 매우 적었습니다.
그렇게 대승을 거둠에 따라
그 동안 절망에 빠져 있던 병사들의 사기는 되살아났고,
독립을 포기하려던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 독립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워싱턴 장군은 기도하며 계획하며…
계획한 대로 믿음으로 실행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생명줄입니다.
이 생명줄이 끊어지면 우리의 영혼은 메말라 가고,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의 생명수가 흐르지 못합니다.
부르짖음으로 우리의 막혀 있던 영혼의 혈관에서 찌꺼기들을 다 뚫어내므로
새로이 생명수가 흘러들어오므로
다시 감사가 넘쳐나기 시작하며
곧 이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해결책이 떠오름에 따라…
구체적으로 계획하므로
하나님의 생명수가 우리의 삶의 현장의 모세혈관이 뻗어나게 되며 그리하여서 구석구석 파고들어 흘러들어가므로 …
우리의 삶에 다시 생명력이 넘쳐나게 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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