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9.2026 느헤미야 2:1-20 삶의 구석구석에 생수가 흐르게 하라

07.19.2026 느헤미야 2:1-20 삶의 구석구석에 생수가 흐르게 하라

07.19.2026

느헤미야 2:1-20 삶의 구석구석에 생수가 흐르게 하라!

부르짖음으로 막혀 있던 우리 영혼의 혈관에 있었던 

혈전이 녹아내리게 되므로 혈관이 다시 뚫려서

생명수가 다시 흘러들어오게 되며…..

영혼의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파고 흘러들어와 

우리는 생명력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는 혈관 속에서 흐르다가 

 우리의행동으로흘러나가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 구석구석까지 

이 생명수가 계속 흘러나가므로 

메마른 땅은 푸른 초원으로 변하고,

말라 버렸던 시냇물에는 다시 맑은 물이 흐르고,

죽었던 강은 생명이 넘치는 강으로 살아납니다.

부르짖고 기도하며 생명수가 우리의 심령에 흘러들어왔는데 

우리의 주위환경에 이 생명수가 흘러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영적인 당뇨병에 걸리게 됩니다.

오늘 읽은 이 느헤미야 2장은 기도 중에 받은 생명수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흘러들어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부르짖으므로 혈전으로 막혀 있던 혈관이 뚫려서…
느헤미야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수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혈액이 심장에서만 돌고 손끝과 발끝까지 가지 않는다면 

병들게 되듯이

기도가 우리 안에서만 끝난다면 우리의 신앙도 병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수의 은혜는 반드시
손으로, 발을 통해서 우리 삶의 현장으로 흘러나가야 합니다.

1장에서 

느헤미야는 기도의 골방에서 생명수를 받아서 그의 심령에 흘러 넘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2장에서는 그 생명수가 삶의 현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의 골방에서 느헤미야의 심령으로 흘러들어온 생명수가
이제 페르시아 왕궁으로 흘러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무너진 성벽으로….

그리고 마침내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렇게 잘 흘러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1.기도하며 현실에서 환경에서…

 응답의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먼저 1장에서 느헤미야가 

부르짖고 감사기도하며 계획을 세우는 동안

느헤미야에게 흘러 내려온 생명수가 

왕에게 흘러들어가서 반응이 나타나기 까지는 약 반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느헤미야 1장 1절과 2장 1절 사이에는 약 여섯 달의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기슬르월(9-10월)에 소식을 듣고 기도했는데, 

니산월(3-4월)이 되어서야 왕 앞에 설 기회가 왔습니다.

 이  반년동안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기다리며

왕의 술 관원으로서 자기 자리를 성실히 

지키며 때를 기다리던중…

어느날 왕이 느헤미야에게 말을 거는 겁니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말을 들은 느헤미야가 크게 두려워 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왕 앞에서 느헤미야가 근심하므로 

느헤미야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술 관원은 단순히 술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이 들어 있는지 먼저 마셔 보았던 것은 

왕은 늘 독살의 위협 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봉사할 때는 

항상 밝고 평온한 모습으로 왕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어야 하는데….

왕 앞에 나가서 시중을 드는 신하가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거나, 

왕에게 불쾌감을 주면은 자칫 잘못하면 

뭔가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왕은 의심하지 않고… 오해하지 않고 

오히려 느헤미야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옵니다.

왕의 그런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담대하게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2:3)

솔직히 대답하는 겁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은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술 관원 한 사람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릴 새가 없었는데

그날은 느헤미야의 근심어린 얼굴을 보았을 때 

그를 수상하게 여겨 취조하게 해서 조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날 왕은 느헤미야에게 호의를 품은채 말을 거는 겁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기도대로 왕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1장 11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넉 달 전, 골방에서 드린 그 기도가 마침내 6개월 후에 이렇게 응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여 놓으셨던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땅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당장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땅속에서는 씨앗은 물을 빨아들이고, 뿌리를 내리고, 

싹이 틀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겁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6개월이었지만 

그 동안, 하나님은 이미 왕의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응답의 싹을 틔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반년동안 느헤미야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그저 하루하루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땅을 뚫고 싹이 올라오듯, 

왕이 먼저 느헤미야를 좋게 보며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네 얼굴에 어찌하여 근심이 있느냐?”하는 겁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땅속에서 키우시던 응답의 싹이 

지면을 뚫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수는 그렇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올린 기도에 대한 응답의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보이지 않던 생명수가
마침내 현실 속으로 흘러나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환경을 바꾸며,
닫혀 있던 문을 여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고 나서 언제 내 기도 응답의 구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로 영적 집중력입니다.

기도했으면 응답의 구름을 엘리야처럼 

언제나 살피며 기다려야 합니다. 

2. 이제 왕에게 흘러온 생명수는 이제 구체적인 명령으로 실제적으로 흘러나가게 하기 위해서 

이음새로 부드럽게 잘 이어져야 합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2:4-5)

왕의 마음에 흘러든 생명수가 이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합니다. 

 혈관 속을 흐르던 생명수가 이제 손끝, 발끝을 나와서 현실로 

환경으로 나타나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때 하나님과 잠깐의 기도를 하므로

이음새를 잘 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연결되도록해서 생명수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골방에서 시작한 기도를 통해서 흘러온 생명수가

 잠깐 왕앞에서 하는 기도를 하므로 생명수가 잘 흘러가게 하는 것이 이음새를 잘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묻고 나서 왕앞에서 구체적으로 말을 합니다. 

“나를 유다 땅… 그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5절) 

“내가 … 어느 때에 돌아오리이다” (6절)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 (7절) 

“삼림 감독 아삽에게…성벽건설에 필요한 나무들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8절) 

이렇게생명수는 구체적인 통로를 타고 흐르는 겁니다.  

수도관이 없이는 물이 집집마다 흘러갈 수 없듯이, 

느헤미야의 네 가지 구체적인 요청이라는 수도관을 통해 

이제는 실제 삶의 현장까지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과 은혜를 실생활에 잘 적용하기 위해서 이음새…. 연결부위를 통해서….

이것이 잘 이어져야 하고 잘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묻는 자리에서 잠시라도 

하나님께 묵도하였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매순간 

하나님을 향한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그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생수가 잘 흘러나가도록….  살았다는 것입니다.

브라더 로렌스처럼….

 프랑크 르바흐 선교사 처럼…

 그의 의식에서 하나님이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식하며 자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3. 이렇게 왕궁을 거쳐서 4개의 통로를 통해서

 흘러나온 생명수는 

예루살렘 무너진 성벽 앞에까지 흘러왔을 때 

느헤미야는 잠시 멈추어 정밀하게 

한번 더 현장을 확인을 합니다. 

 왕의 조서를 받아 들고 유다 땅으로 향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 이제부터 건축합시다!”라고 하지 않고…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에 

내가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갈새 

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무엇을 하실 마음을 내게 주신 것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2:11-12)

생명수는 흐르는 도중에 반드시 ‘확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심장에서 나온 피는 폐로 들어가서 산소를 얻은 후에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온몸의 구석구석, 손끝과 발끝의 모세혈관까지 흘러갑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의 응답을 받아서 

예루살렘에 도착을 막상 하였지만…

조용히 혼자 어둠 속에서 현장을 점검합니다. 

골짜기 문, 용정, 분문, 샘문, 왕의 못까지 돌아보고, 

잔해가 너무 많아 나귀가 지나갈 수 없어 말에서 내려 직접 걸으며 세밀하게 확인합니다(2:13-15).

어느 구간이 가장 심각하게 무너졌는지…. 

어느 구간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어느 구간에 얼마만큼의 자재가 필요한지, 

이렇게 하므로 3장에 가서 각 구간을 정확히 나누어 

각 가문에게 정확하게 작업 분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한밤중의 현장조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장 조사 없이 생명수가 급하게 흘러 가면은

무질서하게 압력만 높은채로 흐르면서 혈관이 터뜨려지면서 뇌졸증이 발생합니다.  

생명수가 제대로 흘러가려면 

정확한 경로를 따라,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흘러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생명수가 어디까지 흘러들어가느냐?입니다.

1.생명수는 마침내 절망한 백성들의 마음까지 흘러 들어갑니다.  

사흘간의 답사를 마친  느헤미야는 

자기 능력이나 열심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을 먼저 간증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는 바라…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말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2:17-18)

이렇게 골방에서 부르짖고 금식하므로 흘러들어온 생명수가 

페르시아 왕궁을 거쳐 예루살렘 성벽까지 생명수가 흘러온 

전 과정을 

이제 하나의 간증으로….

아무 소망이 없는 채로 죽어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은 주전 586년, 

느헤미야가 소식을 들은 것은 주전 445년경—

무려 140을 백성들은 무너진 성벽 옆에서…

무너진 폐허의 현실에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산 유다사람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를 통해서 흘러온 생명수의 물결이 닿자, 

140년간 메말라서 죽어 있던 백성들의 마음이 즉시 하나님의 사명감으로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이제 그들은 다시 소망을 가지며 믿음이 다시 회복되며 

하나님이 자기네 민족에게 주셨던 사명감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살아서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수가 흐르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그 흐름을 막으려는 세력이 나타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2:19-20)

이렇게 생명수가 흐르기 시작할 때  

반드시 그 흐름을 막으려는 방해 세력이 나타나지만 

생명을 택하므로 능히 극복하고 나갑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과 위협이 계속되자 백성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느헤미야 4:14)

우리의 삶에도 늘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습니다. 

인생에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있고,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있으며,

칭찬도 있지만 비난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좋은 일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 안 좋은 일도 늘 같이 끼여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안 좋은 일이 없어지게 하려고 하기 보다, 

이 안 좋은 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조롱보다 생명이신 하나님을 택하였습니다. 

 우리도 생명이신 하나님을 택하는 겁니다. 

 감사기도하므로…

우리의 삶에 숨겨진 좋은 일들을 찾아내어서 감사하므로

 위로 위로 하늘로 날아가며 

 안 좋은 것들은 밑으로 두면서   

하나님의 생명수가 계속 흘러가게 하는 겁니다.

늘 감사하며 찬양했던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다윗은 원수가 없어져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가 눈앞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생명을 택하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는 겁니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생명을 택한 사람은 원수에게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뒤 따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생명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죽어 있던 것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에스겔 47장에서 그 원형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생수가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처음에는 발목에 오를 정도로 얕았지만, 

흘러갈수록 점점 깊어져 마침내 헤엄쳐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 됩니다(겔 47:3-5). 

그리고 이 생명수가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강 좌우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자라 

그 잎사귀는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이 강물이 흐르고 흘러서 아라바까지 흘러들어갑니다.

이 아라바는 사해입니다. 

염분이 너무 강해 그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어 ‘죽은 바다’라 불리는 사해에도…

 이 생명수가 흘러들어가자 물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시작합니다(47:9-10). 

느헤미야 2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골방에서 시작된 느헤미야의 기도는 처음에는 발목 정도의 얕은 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왕궁으로 흘러가자 무릎에 이르렀고, 

예루살렘 성벽 현장으로 흘러가자 허리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속까지 흘러가자 헤엄쳐야만 건널 수 있는 창일한 강이 되었습니다. 

140년간 죽어 있었던 예루살렘에 있는 

무기력과 방탕 속에 시들어버린 백성들의 마음에까지 흘러들어가자  죽은 바다와 같던 마음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의 잃어버린 자존감, 잊어버린 소명, 

메말라버린 믿음과 소망이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죽음같은 우리의 삶에도, 

이 하나님의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서 시작되어, 

감사기도를 하므로  생명수가 우리 삶에 흘러들어오므로 

다시 나의 심령은 살아나고 

내 절망적인 주위의 환경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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