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일서 2:3-6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으면….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찬송을 열심히 부르면….
기도를 많이 하면…..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만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극히 일부에 한해서만이 그런 일은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켰더니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의 알다는 ‘경험하다’, ‘체험하다’…
그냥 머리 속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들었던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며
직접 하나님을 아는…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는 하나님을 만난적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평생 교회를 다녔기에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머리 속으로 잘 압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압니다.
설교를 들으면 이해가 가고 은혜를 받기도 하고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적인 지식도 있지만…
그런데 거기까지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잘 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에 대해 많이 아는 것과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아도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직접 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직접 잘 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김집사와 박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 교회 일로 심하게 서로 다툰 이후로
김집사가 들어오면 박집사는 나가고….
박집사가 들어오면 김집사는 나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서로 봐도 못본 척 하는 서로 껄끄러운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김집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용기를 내어서 김집사는 박집사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복음성가 테이프를 하나 선물했습니다.
박집사가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박집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뭔가를 하나 나도 선물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주 주일 교회 주차장에서
이번에는 박집사가 김집사에게 다가와서
김집사의 차 트렁크를 열게해서 잘 포장되어 있는 갈비를 얼른 집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면쩍어서 바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 때 그 갈비를 받은 김집사는….
‘저 무심한 박집사가 이렇게 비싼 갈비를 다 주다니’
김집사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김집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경험하는 겁니다.
사도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하고 있었던
영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해서 2, 3세기경에 교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세계와
영원하고 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 되어 있는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적 세계로 들어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은…
머리 속으로 아는 영적지식만 중요하지,
실제로 살아가는 육신적인 삶은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래서…
말씀을 많이 알려고 애를 썹니다.
설교도 이 설교 저 설교 듣습니다.
신학적인 지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지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삶에서는 전혀 몸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뜬구름 잡듯이…
이상하게 이끌어 가려 하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잡아 주려고…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오늘 이 본문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국회부의장 출신이셨던 황성수 목사님이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화장품 밀수장사를 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이 아줌마를 기차에서 만나며 반갑게 인사말씀을 하는데…
“아주머니 어디 가십니까?”
“예 지는 대구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기도하러 갑니더…”
“무슨 일로 가십니까?”
“마음이 답답하고 컬컬해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실컷 회개하고
마음이 시원해지려고 안갑니꺼!”
“그러면 그렇게 갔다 오신 다음부터는
화장품밀수 장수 안하겠네요”
—-“아니 예 또 그 화장품밀수장사를 해야지 예?
그래야 우리도 계속 먹고 살아가지 않겠습니꺼….
그라고 이렇게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실컷 기도하고
마음에 시원해지면 됩니더….”
현대판 영지주의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분은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지만…
사실 이분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트레스풀려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말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사상이며,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말씀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기로 했다면,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써게 됩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고, 십자가를 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대로 우리의 삶에서 살아내다 보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맞네”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말씀의 열매가 나타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열매를 경험하면서
“과연 이 말씀이 진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이 말씀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지요”라며
더욱 더 하나님을 잘 믿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그 열매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만난 그 결과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려고
하다 보면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우리는 찬송을 하는 겁니다.
루이사 여사는 남편이 바다에서 한 어린 소년을 구하려다가
물에 오히려 남편이 빠져 죽고 난후에 이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지금은 내 남편이 죽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 증거는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이 루이사 여사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이 찬송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과 자기와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많은 증거가 있었기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하였던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격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환경속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체험 할 때—바로 그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간의 사이에서도
인격적인 관계의 핵심은
“서로의 말이 오고 가며 말대로 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리는데….
내 귀에 들리지 않게 들리지만
하여간에 내 안에서 분명히 들리지만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계속 무시하면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인격적인 만남이 더 깊어지면은
하나님과 나와는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미 주어진 계명을 잘 지키는데서
하나님과의 사이가 더 가까워져서 이제는 세밀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기까지 하므로
더욱 더 하나님과의 사이가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5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제 홀로 남은 어머니가 있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가 선교사로 가기 직전 작은 방 안에서 6개월 동안 대기하고 있는 동안에 리버풀에서 그의 어머니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아들에게 정성껏 침대를 정리해 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지막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함께 무릎을 꿇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허드슨 테일러가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입니다.
항구로 나갑니다.
배가 떠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는 끝까지 따라옵니다.
배는 점점 멀어지고 이제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어머니의 억눌렸던 마음이
터져 나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절규… 그 사랑의 울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합니다
“그 소리는 내 마음을 비수처럼 찔렀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에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는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구나…”
그는 그날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내려놓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에 독자이삭을 제물로 갖다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흘길을 걸어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걸어 갔습니다.
이삭을 묶어서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에게 내리 치려하자 하늘에서부터 여호와의 사자의 음성이
다급하게 들려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어떤 인격적인 만남을 가졌겠습니까?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했을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안에 있는줄을 우리가 아노라….
우리들은 먼저 이해하고 나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우리와는 반대입니다.
먼저 순종하고, 그 다음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알리라”
여기서도 행하려고 하는 순종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운전을 배울 때 아무리 운전에 대해서 설명을 들어도
브레이크 감각… 핸들 감각….잘 모릅니다.
직접 운전해 봐야 압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런데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해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로마서 12:1-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뜻이 무엇인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거룩한 산제사로 순종을 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못 만납니까?
말씀대로 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듣기만 하고, 분석만 하며…
인간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될까 계산만 하고 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깨달음이 없는 겁니다.
**우리 기도 왜 하십니까?
우리 말씀을 왜 읽습니까?
우리 말씀을 왜 암송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그토록 기도를 하고 그토록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겁니다.
대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서 말씀 암송을 합니다.
정작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목적은 잊어버린채
그렇게 하는 과정의 수렁에 빠져서
그 자체에서 만족을 얻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귀신들도 그런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고 감정적으로 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교회에 와서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지만 정작 삶에서는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가 귀신들도 그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감정적인 느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씀대로의 순종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어떤 특별한 체험에서 시작되는 곳이 아닙니다.
어느 한 말씀을 붙잡고 살아보려고 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마음 속으로 들리는 말씀 중 단 한 가지라도 실제로 살아보는 겁니다.
한 가지만 붙들고 하는 겁니다.
그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우리들의 삶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 한 걸음이 우리들의 신앙을
지식에서 경험으로….
경험에서 동행으로…
동행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깊어질 것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곧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예수님은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오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하시는대로 걸어가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살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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