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2026 살전 5;16-19 성령을 소멸치 말라!

03.15.2026 살전 5;16-19 성령을 소멸치 말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9 성령을 소멸치 말라!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그 하나님의 영을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큼 

성령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요소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말씀과 기도, 찬송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순종함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마치 큰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담는 우리 영혼의 그릇은 금이 간 그릇과 같아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새어나가 소멸되곤 합니다.

본문 19절의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담는 우리의 항아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령은 소멸되는 겁니다.   

제자들이 전도 여행 중에는 귀신을 쫓아냈으나 나중에 실패했습니다.  

제자들이 바빠서 그랬는지… 

하여간에 자기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소멸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기도로 성령을 채워놓으라는 것이셨습니다. 

성령의 소멸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겉으로만 예수 믿는 사람이지 능력도 없는 빈깡통입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에서 공백은 없습니다. 

성령이 소멸하면 바로 그 자리에 악한 영이 채워져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언제 어떻게 소멸되겠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바울은 이 말씀들을 따로따로 말한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기쁨 – 기도 – 감사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이미 성령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기뻐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느냐?

**성경은 그 뿌리를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첫 번째 원인은 교만함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성령이 소멸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라는 성채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교만하면은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믿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판단을 믿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경험을 믿습니다.

이때 성령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 후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는데
자기가 잘나서 승리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의 영혼에 성령은 떠나시고 

악령이 들어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헤롯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아 당신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다”라고 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다가 

멸망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에게는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원죄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는 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따고 싶으면 따고…

나는 내 맘대로 살 거야.”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원죄로부터 오는 본능, 

그게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하며…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질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가시나무 노래 가사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자기로만 가득 들어차 있기에 그래서 교만하기에 

자기 잘난 맛으로 자랑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결코 그 사람에게 함께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이…

점점 소멸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악령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결국 그는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교만한 인생은 패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하면 내가 중심이므로 

나보다 더 잘 되는 사람이 있으면 

시기하게 되고, 원망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므로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계속 원망했던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만나를 주어도 불평….

물을 주어도 불평….

구름기둥을 주어도 불평…..

이렇게 교만하니까 모든 것에 감사가 사라지면서 

성령이 소멸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을 때 소리없이 성령은 소멸됩니다.

성령이 임하신 후에 그 성령이 육체가 되지 않으면 

성령은 소리없이  소멸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한 성경 말씀 중에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데 우리에게 와 있는 성령은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므로 말씀이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성령이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임한 말씀이 성령이 삶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을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하는… 

우리의 몸을 통해서 나타나면….

 성령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육체로 나타난 말씀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 성령은 더욱 더 뚜렷하게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뚜렷하게 계시면 그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할 때…

말씀대로 

용서하지 못하던 사람을 용서하고…

미워하던 사람을 품고 다시 사랑 할 때…

자기의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으며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얼굴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어느 부흥회에서
한 사람이 눈물로 회개하며
먼저 다가가 안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성도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그 순간 교회 전체에
성령의 임재가 임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은

말씀은 떠나지 않을뿐아니라 더욱 더 흥왕하게 되며…

 성령은 더욱 더 뚜렷하게 임하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므로 성령의 역사는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를 느끼며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요셉이 말씀의 삶을 살아내자…

하나님을 모르는 보디발이었지만 

요셉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저 아이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채렸습니다. 

다른 종들은 그저 마지못해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풀이 죽은채로 

일을 하는데 이 아이는 뭐든 주어지면 기쁨으로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하니까 그에게서 빛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디발이 볼 때 요셉만이 유독 눈에 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신분을 상승시켜 자기 집의 가정총무로 삼았고 

그 때부터는 보디발 집 전체가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과 성령이 삶으로 행동으로 눈에 보이게 되면

하나님의 영은 소멸하지 않으며 더욱 더 뚜렷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해서 성령을 받고 말씀을 받았는데

그렇게 살아내지 않으면…

성령은 점점 점점 소멸되어 가며 희미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에 와서 받은 성령은 단번에 우리가 눈치챌 정도로 쏟아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가만히 있어도 성령은 소멸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금이 간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변화산 아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 들려서 물에도 들어가고 불에도 들어가는 아이를 둔 아버지가 와서 귀신 쫓아달라고 하였을 때  

제자들은 과거에도 귀신들을 쫓아 내었기에 

지금 귀신 쫓아내는 것쯤이야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자기네들에게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성령의 능력이 이미 소멸된 줄을 몰라서 그날은 귀신을 쫓아내지를 못했던 겁니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날 수 없느니라” 

다시 기도해서 성령을 채워넣으라는 겁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그 능력이 소멸된 줄을 몰랐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번이나 얻었습니다.

한 번은 엔게디동굴에서였습니다.
사울이 혼자 동굴에 들어와서 겉옷을 풀어서 옆에 놓아두며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더 깊이 은밀하게 숨막히게 그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했습니다.
“지금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칼을 들어
사울의 생명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겉옷자락만 베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산 위에 올라가
사울을 향해 외쳤습니다.

“나는 왕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
왕은 왜 나를 죽이려 하십니까?”

그때 사울은 성령의 감동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서 

이렇게 울면서 말합니다.

 “내 아들 다윗아,
네가 나보다 의롭다.
나는 다시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사울은 다시 군사를 모아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합니다.

이렇게 사울은 죽이지않겠다고 하였지만

돌아서기만 하면 불순종하며 살아갔습니다. 

그 때는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이 임하였지만 

그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영은 그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했습니다.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다윗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형통하였던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소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육신을 입혀야 합니다.

성령이 육체를 입으면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이 육체를 입지 못하고 

영으로만…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있으면….  

성령을 유지할 수가 없으며 성령은 결국 소멸됩니다.

성령이 오면 그것을 삶으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 나타내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육체가 되지 않으면 성령이 소멸되므로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은혜는 사라지고
진리는 희미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도 점점 약해집니다.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골고루 퍼져서 나중에는 이 생명수가 사해 죽은 바다에 이르러니까

죽어 있었던 사해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니까

물고기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강 좌우에는 실과가 무성하게 열리며 생명이 풍성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꽉 막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수가 막히는 곳에는 더 이상 그곳에 생명수는 새로이 흘러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곳을 진펄과 개펄이라고합니다. 

진펄은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진흙 땅이며

개펄은 강이나 바닷가의 질척한 늪지인데…

물이 닿지 않으니까 생명이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이 계속 흘러오다가
내가 막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교만이 막고
불순종이 막고
용서하지 않음이 막고
죄가 막고
세상 욕심이 막으면은 

우리 영혼은 더 이상 새로이 성령이 흘러들어오질 않아서 

진펄과 개펄이 되어 버려 생명 없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우리의 불순종함으로 성령의 흐름을 가로막으면 

성령의 생명수는 더 이상 흘러오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은혜와 감격은 사라지고
기도는 식어지고
기쁨은 메마르고
신앙은 형식만 남게 됩니다.

성령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못난 자아가… 

욕심많은 자아가…

 우리의 무심한 자아가… 

성령이 흘러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사울에게 임하였던 성령이 

사울의 고집과 불순종이 

사울에게 임하였던 성령을 가로막으니 

성령이 소멸되며  

악한 영이 그를 집어삼키며 그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홍수나 산사태 후에
계곡이 막혀 ‘자연 댐’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와서 굴착기로 돌을 치우고
막힌 물길을 터 주면
멈췄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며
죽었던 땅에 생명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내 안에 성령의 흐름이 막힌 지점이 어디인가를 살피고
다시 회개와 순종으로 그 막힌 곳을 열어야 합니다.

그때 생명수는 다시 흐르고
우리의 영혼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흘러들어온 확실한 증거는….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셋은 현재 내 영혼이 얼마나 성령 충만한지를 보여주는 

영적 계기판이 됩니다.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도록…교만하지 않으며 말씀대로 행하여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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