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3장 16–18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을 새해의 표어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강성해지고 건강해지고 범사가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순종하여서
하나님이 감동을 느끼실 정도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바로 그렇게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이분들을 보고 하나님은 대단히 감동을 받으시고
그들이 불속에 던져졌을 때 그 불속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겁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워 놓고
모든 사람에게
“음악 소리가 들리거든 모두 엎드려 절하라.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까 무서워서 엎드리며 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이 그렇게 뜨겁게 벌겋게 있는데도 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격노한 왕이 그들을 불러 세워서 한번 더 기회를 줍니다.
“다시 묻겠다.
음악이 울릴 때 지금이라도 엎드려 절하면 살려 주겠다.
그러나 거절하면 즉시 불에 던질 것이다.
그때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이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님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왕이시여,
이 일에 대하여 우리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말이 바로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겁니다.
“하나님, 당신이 우리를 건지시지 않으실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건지지 않으셔도 하나님이시고
이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순간 하나님은 이들의 용기와 믿음의 고백에 크게 감동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참으로 나를 믿고 사랑하는구나”
“내가 아무런 행동을 안취해도,
내가 그들을 구원하지 않아도
나를 버리지 않는구나.”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크게 감동을 받는 겁니다.
드디어 그들의 몸이 불 속에 던져지자…
하나님은 불을 즉시 꺼 버리지 않으시고
풀무를 무너뜨리지도 않으셨지만
불속으로 들어가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결박한 줄은 타서 사라지고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 않고
그들이 입고 있었던 겉옷도 불에 그을린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를 묶고 있던 것들을 다 태우시고 제거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또 이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자기의 일생을 통해서 감동을 준 인물이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역대상 4:9–10)
원래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고통, 슬픔”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말합니다.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야베스라 하였더라”
“너를 낳을 때 힘들었고,
너를 낳은 이후도 너무나도 힘든 고통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안고 시작한 고통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렇게 “야베스(Jabez)라는 이름 자체가
‘고통을 주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는 평생 사람들로부터
‘절뚝거리는 인생(gimper)’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고 가정환경은 어렵고..
스스로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야베스는 평생 ‘gimper’로 살 수 있었지만,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그에 대해서 말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
왜 존귀했을까요?
그가 이룬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한계를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자기 이름을 저주하지도,
환경을 탓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감동을 받으시고
모든 것을 허락하셨기에 그는 존귀한 자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새해에 우리 기왕 사는 것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며 살아가십시다.
새해에 우리 기왕 사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가십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며 살아갈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충만해지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감동 있는 삶은
특별히 눈에 띄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흔적을 남기는 삶입니다.
감동 있는 삶은
어려운순간에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의를 택하고,
손해가 분명한데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음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감동 있는 삶은
큰 일을 해내는 삶이 아니라,
작은일을끝까지신실하게감당하는삶입니다.
감동 있는 삶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닙니다. 눈물 없는 삶도 아닙니다.
오히려 눈물이 있어도
원망 대신 꿋꿋하게 기도를 하며,
상처가 생겨도 냉소 대신 따뜻함을 남기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왠지모르게,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우리 용기를 내어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한해를 살아가십시다.
***이웃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마태복음 5:41)
그냥 참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군인은 유대인에게 강제로짐을오리를 (약 1.5km) 지고 가게 할 법적 권한이 있었습니다.
보통 유대인이 이 명령을 받으면 분노와 모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너희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릴때 억울해도 참아라”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짐을 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감동’이 생기게 됩니다.
로마 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은
보통 오리를 가서 짐을 내려놓고 욕을 자기 한테는 안 하더라도
얼굴이 씩씩거리는데…..
그런데 오리나 짐을 싣고 간 사람이…
“당신이 필요하다면 다시 5리를 더 가 드리겠습니다.”
이 순간,
명령하던 로마군인은 당황해 합니다.
“이건 뭐지!”
갑질을 하며 일을 시키고 있었는데
힘들어 억울해 해야 할 사람이 여기서
“더 하겠다고 하니까”
어리둥절하지만 감동이 되는 겁니다.
강제로 일을 시켰는데
오히려 기쁨으로 해 주면서 더 할 것이 없느냐?’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방식의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원수를 혼란에 빠뜨리고
폭력을 멈추게하고증오를 사랑으로전환시키는
새로운 힘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한 형태의 영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시는 어느 장로님이…
어느날 결핵에 걸리고 폐렴에 걸려 죽어 가는 수리공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계단에 앉아서 죽어 가길래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 폐렴을 치료해 주고 몸에 있던 결핵까지
다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저 친구가 나한테 얼마나 고마워할까’
그랬는데 현지인인 이 친구에게 집에 어떤 것이 고장이 나서 그걸 고쳐 달라고 하니
‘너무 고맙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돈이고 뭐고 싹 다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렇게 잘 해줬는데 장로님은 무척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놈이 있어!’
뒷통수 맞은 기분입니다.
그 때 인천에서 목회하시는 박목사님이 마침 선교차 아프리카에 와 있었는데
화가 나서 박목사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이런 놈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때 박목사님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오죽하면…
은혜를 베푼 사람의 마음에 칼을 찌르고
또 돈을 갖고 도망을 가겠습니까?
그분을 다시 부르세요 봉투에 돈을 넣어 얼마나 힘들었겠냐?
얼마나 어려웠으면은 다시 또 우리 집에서 돈을 가져갔겠냐?
‘이것 갖다 써라’고 하세요”
이런 조언을 들으니
화가 나는 겁니다.
“아니 뭐 이따위 말이 있어”
그런데 그 위에 가면은 본인 장로님의 기도실이 있습니다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자꾸 하라’고 하는 감동을 성령님이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언을 한 박목사님이 가고 난 다음에
봉투에 돈을 넣어 준비하고 그 사람을 불렀더니 전화를 받질 않는 겁니다.
그래도 계속 전화를 이 사람이 간신히 연결해서
“빨리 좀 와라 내가 너에게 줄게 있다” 했더니
그 사람이 왔더래요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겠냐?
얼마나 어려웠겠냐?
오죽했으면 당신이 그랬겠냐? 이걸 가지고 가서 써라”
이 친구가 기절을 하며 충격을 받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장로님이 박목사님을 나중에 다시 만나서 이 간증을 하는데…
“목사님 중요한 건 이거였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니까…
저는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뭐를 하면서
망하기도 하고 고통 당하기도 하고 배신도 당하고
인간적인 쓰라린 마음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고 난 후에 생각만 해도 다시 고통에 빠지고 하던
이런 많은 문제들이 생각을 해 보니 아무렇지도 않아졌어요!
그것들이 치유된게 신기하기가 짝이 없어요.
마음의 상처가 다 없어졌습니다.”
난생 처음 그렇게 살아봤다는 겁니다.
그 오랜 세월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렇게 살아본 건 처음이랍니다.
“그런데 목사님 다음에 또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 집에 일하는 여자들이 많은데 다 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주고 닫아 주는 문지기가
꾸러미를
하나 갖고 오더니 여기 주방에서 일하는 누군지 모르지만은
사이다니 콜라니 여러가지 것들과 뭐를 잔뜩 숨겨서
저 문근처에 있는 풀속에다가 숨겨 놓았더랩니다!
화가 나서 저녁 6시이기 때문에 경찰에 연락을 당장은 안 하고
내일 아침에 일찍이 다들 불러만 놓고 경찰을 불러다가
‘누가 그랬냐’
이러면은 다시는 안 그러겠지…
‘어떻게 이렇게 상처를 줄 수가 있어!’라고 할까 했는데
그 때 생각이 나는 겁니다.
얼마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했더니 치유가 되었던 것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판단으로
여러 마시는 것들을 잔뜩 갖다가
여덟 팩에서 열팩정도 준비를
다 해가지고 불러 모았습니다.
“누가 이 맛있는 걸 가져 가려고 거기다 숨겨 놨더라…
내가 정말 당신들에게 미안하다…
당신들 마실 것들을 내가 정기적으로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를 용서해라!”
그렇게 말을 하고난 다음에 그들이 다 충격들을 받는 겁니다.
그리고 한꾸러미씩 줬는데 다들 굳은 얼굴로…
얼굴을 들지를 못하고 있더래요!”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거를 저분이 지금 주는데
이거는 무슨 뜻일까?’
말도 안 하고 다 굳어져 있더랍니다.
그리고 그 날 낮 12시가 넘자 온 집안에 활기가 돌고
늘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집안 일들을 다 가서 치우고
자기 일같이 모두 다 뛰어다니며
자기 집안 일들을 하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오리를 가라 하면 십리를 가라”는 말씀은
지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웃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우리 삶의 현장을 천국으로 이루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요셉도 형들의 시기로 원하지 않게 노예가 됩니다.
여기서 요셉은 ‘억지로 오리’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 할것만 겨우 하지 않았고 억울함에 젖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의 집 일을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주인이 미처 시키지 않은 일까지 다 하니까
주인이 감동을 받아서 그에게 집안 전체를 다 맡겼던 겁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에도
감옥은 요셉에게 또 하나의 ‘억지로의 오리’였습니다.
보통이라면 마음을 닫고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며 삶을 자포자기 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십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남들을 돌보고 궂은 일도 자청해서 다 하는
십리를 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며 간수장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옥에 있는 간수장이 감동을 받게 되며 옥에 있는 모든 일을 요셉에게 또 다 맡기는 겁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고,
유대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였습니다.
율법과 관습에 따라서
룻은 얼마든지 시집을 떠날 수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너희는 너희 친정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데 룻은 여기서 ‘십리의 삶’을 살기로 선택합니다.
룻은 말하기를…
“어머니를 떠나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렇게 해서 베들레헴에 도착한 룻은 불평하지 않고
대신 남의 밭에 떨어진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를 섬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룻의 행위를 보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말합니다.
“네가 남편이 죽은 후에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고…”
결국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오벳의 어머니가 되며,
다윗의 증조모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룻은 “오리를 가라 하면 십리를 가라”는 말씀을
가장 조용하고 아름답게 살아내었습니다.
우리는 기왕 살다가 가는 것
먼저 하나님께 감동을 주며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모든 범사가 잘 되는 축복을 받으며
또 우리의 이웃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다가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삶을 살다가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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