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보기 위해….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우리는 점점 더 한 순간이라도 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처음에 믿을 때에는 겨우 교회와서 예배드릴때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의식하지만….
이제 신앙이 점점 자라면서 우리들의 영혼은 자라고 자라서
하나님을 더욱 더 많이 더욱 더 세심하게 보게 되며 하나님과 더욱 더 깊은 신앙으로 자라게 됩니다.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늘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했겠습니까?
하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밤하늘의 별들도,
끝없이 펼쳐진 하늘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늘은 계속 선포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듣지 못했고,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숨어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똑같은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냥 날씨만 보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손길이 여기에도 있구나.”
라고 의식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이 숨어 계신게 아니라 우리가 보기를 그만둔 걸세.”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느냐, 의식하고 있지 않느냐…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생명의 길을 걸어가느냐,
죽음의 길을 걸어가느냐로 결정되어집니다.
1. 매순간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여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다 대상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없는 기도가 없고 대상없이 허공에 하는 감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라는 그런 대상과 목적어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기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항상 기뻐하라고 했을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우리가 그렇게 항상 기뻐하려고 흉내라도 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그런 정성어린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손이 맞닿아지게 되므로 그 이어진 선을 타서 하늘의 기쁨이 부어지는 겁니다.
처음에 우리가 기뻐하려고 하는 기쁨은 하늘의 기쁨을 가져오게 하는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은… 펌프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
먼저 조금의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을 따라 깊은 곳에 있던 물이 올라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려고 하므로….
마중물이 들어가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하늘의 기쁨이 하늘의 우물에서 길어지면서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이겨내는 겁니다.
이렇게 기쁨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면서
우리 마음의 요란스럽게 격동하는 것이 가라앉으며
우리의 마음은 점차 진정이 되어가며 평안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에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
기쁨이 있고 그 뒤에 화평이 나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우리 마음의 힘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우리는 힘차게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우리는 잘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하는 겁니다.
내 의지를 다해서 기뻐하는 겁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더라도 입에서는 웃음을 지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마치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우리들이 배우처럼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자신이 슬프다고 해서
무대 위에서 자기 마음대로 표정을 짖지 않습니다.
감독의 연출과 대본대로 그 역할에 충실히 따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은 불평하고 화를 낼 수 밖에 없지만
우리 삶의 연출가이신 하나님은 ‘그럼에도 항상 기뻐하라’는 대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 내 마음은 너무 힘들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대사대본대로 기뻐하겠습니다’ 하며 믿음의 연기를 할 때,
그 순종의 무대 위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껍데기뿐이었던 연기가 어느덧 내 실제 고백이 되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참으로 하늘의 기쁨을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의 의지는 우리의 감정을 기쁨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시편 34편에서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살기 위해 침을 흘리며 미친 체를 하고 겨우 목숨을 구걸해 도망쳤습니다.
수치스럽고 참담하여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그 아둘람 굴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다윗은 수치와 두려움 한복판에서, 기뻐하기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연기를 하였습니다.
1절에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마음의 감정은 죽을 맛이었기에 그의 입술만 움직였던 것입니다.
입술만 겨우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2절에가면서부터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2절로 가면서 다윗이 달라집니다.
내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이제는 감정이 데워져서 정말로 기뻐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같이 기뻐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입술로만 찬양하며 형식적으로만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뻐하려고 찬양하는 가운데
그 영혼 안에 실질적인 기쁨이 샘솟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의지적으로 껍데기와 같은 기쁨을 흉내 내었을 때… 하나님은 그 순종을 보시고 이내 우리 속에 하늘의 기쁨을 채우십니다.
2.—-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보기 위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할 수가 있나요?
우리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함께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함께 하고,
일하면서도 함께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나님, 오늘도 함께해 주세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하나님, 제 마음을 아시지요…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면 우리의 삶에서
좀 더 많은 순간에서 하나님이 점점 더 실제적인 분이 됩니다.
2001년쯤 첫째아이, 둘째아이 다 Torrance Little league에
등록을 시켜서 야구를 시켰습니다.
주로 토랜스 있는 아이들만 불러 모아서 미국 프로야구팀 이름을
따가지고 팀을 만들어서 서로 시합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 부모들은 따로 아이들 야구시합 펀드레이징에 관련된 일을 voluteer로 사인을 하라고 해서
제가 사인 한 일은
야구장에 있는 스낵 샵에서 일일 직원이 되어서
핫도그도 팔고 햄버거도 팔고 그리고 나중에 그 모든 식판도 다 씻고 정리하고 마무리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 일이 별로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도 많이 있고 힘든데….
이것 한다고 해서 시간당 페이를 받는 것도 아니고…..
막상 그날이 되어서 제 속으로
‘과연 내가 일일 스낵샵 직원이 되어서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고….지겨운데….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운전을 해서 가는데
갑자기…
그 때부터 제가 작정을 하고 마음에 의지를 다하여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야구장에 학부형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이 스낵샵 일일 매점 직원이 되어서 갑니다.
하나님… 함께 가시지요”
매점에 들어가서도 사람들에게 껌이나 캔디나 과자 같은 것을 팔 때에도
“하나님…함께 이 캔디나 과자를 팝니다.
잘 팔게 하여 주시옵소서!”
핫도그를 팔 때에도
“하나님… 이 핫도그를 잘 만들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매 순간 저에게는 처음 해보는 새로운 일이라서
“하나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겁니다.
이 기도는
쉬지 않고 하는 눈 뜨고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눈 감고 가만히 앉아서 하는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눈을 뜨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것도 기도인 것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계속 쉬지 않고 바쁘게 일일 매점 직원이 되어서
그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겁니다.
핫도그를 만들 때에도… 햄버거를 만들 때에도
하나님이 핫도그를 맛있게 만드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렇게 하는거예요….
그리고 맨 나중에 아이들 야구 게임이 다 끝나고 나서 이제 정리하며 여러 요리한 기구들을 다 씻고 설겆이를 할 때에도
“하나님 제가 이 식판을 씻습니다.
잘 씻게 하여 주옵소서!”
그 좁은 매장안에 있는 키친에서 그렇게 계속 하나님과 그렇게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설겆이를 하며…
어느새 시간가는줄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매점 발런티어 일을 다 마무리 하고 집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날 우리 집사람은 내가 발런티어일을 힘들게 한 것을 알기에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발런티어 하는 내내 하나님과 같이 하였기에
하나님의 기쁨으로 가득 들어차 있어서
너무 좋아서 가슴이 멍먹한 겁니다.
우리는 어차피 하루 종일 속으로 무슨 이야기든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생각을 누구와 말하고 있느냐입니다.
보통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나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인 2역…. 3역이 되어서 갔다 왔다 배역을 바꾸어 가며
내 안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며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말을 합니다.
“왜 저 사람이 나한테 저렇게 했을까?”
“나만 손해 보면 안 되는데…”
“저 사람 잘 안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내가 더 잘될 수 있을까?”
이렇게 나 자신과만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화가 나고, 억울하고, 걱정하고, 비교하고, 계산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지쳐버립니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지고,
기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어서 이 혼잣말을 하나님과의 대화로 바꾸는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이 나한테 저렇게 했을까?”
→ “하나님, 제가 지금 이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만 손해 보면 안 되는데…”
→ “하나님, 저는 손해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 “하나님, 저는 앞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도하여주세요.”
“저 사람은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하나님,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
나 혼자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을 바꾸시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시고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혼잣말에서 하나님과의 대화로….
그러면서 하나님을 모든 순간에 보게 되는 겁니다.
3.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겁니다.
모든 일에는…
좋은 면… 안 좋은 면이 동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배치를 동시에 해놓으셨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떤 범사든지 대개 좋은 면은 다 숨겨져 있습니다.
안 좋은 면은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다 잘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숨겨진 좋은 면을 찾아내어서 감사하는 겁니다.
마침내 찾아내어서
“이 험악한 삶 중에서도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좋은 면을 예비하셨구나!”
그럴 때 우리는 그 좋은 면이 바로 하나님의 숨겨진 손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를 들은 어느 여집사가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같이 술에 만취되어 늦게 집에 들어오는
술고래였습니다.
그 날도 인사불성이 되어 집 앞에 쓰러진 남편을 힘들게 끌어다가 겨우 눕혔습니다.
그 부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고 하니,
자기 신세가 하도 처량하여 하나님께 기구한 자기의 신세타령만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하며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감사하라는 설교가 생각이 나서…
감사 조건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도,
무엇 하나 감사 조건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계속 감사 조건을 찾아보니, 감사한 일이 하나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게 뭐냐?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얄미운 남편을 쳐다보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술에 취했어도 다른 데 안 가고 꼭꼭 집을 찾아오니 감사하고,
—-토요일은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 날 집 잘 지켜줘서 감사하고,
—-주일 날 계속 자니 교회 나오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게해서
감사하고,
이렇게 감사하다가 보니까 이제는 진실로 감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갈증을 느낀 남편이 잠을 깨고 보니
자기 부인이 웃으며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여자가 혹시 정신이 돌았나 해서…
“여보 한밤중에 왜 잠은 안자고 미친 사람처럼 뭐 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싱글싱글 웃는 거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여보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인은 이제껏 자기가 기도했던 감사 조건을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감동을 받는 겁니다.
“여보 내가 예수 믿는게 그렇게 소원이면,
오늘부터 예수 믿어 줄게!”
이렇게 해서 10년 동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 번의 감사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감사는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좋은 점을 찾으므로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하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핵심적인 뜻은 우리로 하여금 매순간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에서
처음에는 기뻐하기로 작정해서 기뻐하였지만
그게 마중물이 되어서
조금 있다가 하나님의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내 자체가 기쁨 덩어리가 되어버리며
하나님의 임재에 휩싸이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나님과 삶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안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종일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삶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내 안의 하나님을 인식하며, 나의 모든 일상과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터에서 일을 할 때도, 가정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하나님, 지금이일을하나님과함께합니다. 같이하여주옵소서” 하고 고백하는 것이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숨겨진 손길이 일상에서 매순간 보이기 시작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일상에서 숨겨져 있는 감사거리를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올려드리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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