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26 치료하시는 하나님(여호와 라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내실 때
앞에 가로막힌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온 지 사흘이 지나자,
그들은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물이 다 떨어지자 사방에 물을 찾아 다녀도 물을 구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 했습니다
그런데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간신히 물은 찾았지만,
물이 써서, 도무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지도자인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모세는 그 나무를 꺾어 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도저히 마실 수 없었던 쓴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때에 나 여호와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셨을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인생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광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곳곳에 있고…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참으로 답답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쓴 물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대로 원망, 두려움, 불신앙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백성들은 믿음 없는 병에 먼저 걸렸습니다.
바로 그 광야생활을 본격적으로 해야만 할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이런 어려운 일이 계속 네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문제가 다가오면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나님 자신에게 나아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라는 말을 하시며
“내가 쓴물에서 단물로 바꾸듯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너희의 쓴 삶을 달게 바꾸어주겠다”
라고 선언하시며 나뭇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쓰디쓴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달아지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쓴 물 사건 후에
치료의 하나님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내 온 몸이 경험하므로 내 온 존재가 치료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고…
그들은 거기, 그 물 옆에, 장막을 치며 온전한 회복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의 숫자는
대략 2백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LA county의 인구가 대략 9백 8십만 명 가량 거의 1000만명 정도 되는데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총 숫자는 약 만 오천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약 한 0.15%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 2백만 명 중에 간단한 감기 환자 빼고
0.15%가 치료를 필요하는 환자라고 하면
3천 명 정도가 환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3천 명 환자를 위해서 돌보아야 할 의료시설들이 꽤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시편 105:37 (개역개정)
그들이은과금을가지고나왔으며그들중에병든자가한사람도없었다고말씀하십니다.
사람이말한것도아니고하나님이확인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그들의 건강을 세밀히 보살펴 한 사람의 환자도 생기지 않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히브리 원어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가
‘여호와 라파’입니다.
‘여호와 라파’는 ‘여호와는 의사’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
“나는 너희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를 치료해주는 의사다.”라고 계시해 주신 겁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3-5)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병에 걸리면 삶이 무척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며…
병에 걸리면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병이 들었을 때에는 의사이신
하나님에게 나아와서
“하나님, 제가 병들었습니다. 저를 치료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하는 것은 절대로 미신이 아니며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치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시41:3)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반드시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 가운데 병 고치는 일은 항상 하셨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약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4-5)
병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의 질병과 그에 따른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짊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군인들에게 마흔에 하나 뺀 39차례의 매를 맞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등은 찢어지고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그 살점이 찢어질 때마다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의 사역중에 하나는 치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치료의 사역을 제자들에게도 맡기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20)
이렇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몸은 내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아프게 된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성전을 사용할 때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되게 사용합니다.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우리의 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더러워지며 여기 저기 빈틈이 나서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절제하게 음식을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고
그래서 잠을 잘 못 자며….
우리에게 들어오는 스트레스를 방치하게 되면은
몸에 병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몸을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며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므로 이 성전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몸에 병나는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영혼육의 질서가 무너지면 몸은 병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영 · 혼 · 육의존재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혼은 생각, 감정, 의지입니다.
육은 눈에 보이는 몸입니다.
이 세 영역이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우리 사람의 중심은 영입니다.
영이 제대로 서 있어야 몸도 건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기도가 멈추고….말씀이 끊어지고….죄가 마음을 지배하면
영적 생명력이 약해지며
불안, 두려움, 분노, 허무가 찾아오며
혼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영향이 몸까지 가게 되며
몸이 서서히 약해지며 병에 걸려드는 겁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7:22)
마음의 상태는 몸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 미움, 용서하지 못함, 과도한 염려….
이런 것들은 몸의 긴장을 높이고
면역을 약하게 만들어서 결국 병에 걸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의학도 말하기를…
많은 질병이 스트레스와 관련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002년에 이주일 씨가 사망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폐암을 진단받았을 때….
그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서
담배는 독약이라며 금연캠페인을 벌였지만
실제 나중에 의료전문가들이 밝혀낸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주일씨가 앓았던 폐암은 선암이었습니다.
이 선암은 주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이나 비흡연자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종류입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그의 암 종류는 골수 흡연자에게 주로 나타나는 ‘편평상피세포암’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을 의료계에서 뒤늦게 발견하였습니다.
이주일씨가 앓았던 선암은 담배 타르가 직접 닿는 기관지가 아니고, 폐 구석진 곳에서 발생하며,
비흡연자나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암이었습니다.
담배로 인한 암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폐암 선암에 걸리게 하였는가?를 의사들이 추적해보니까
이주일 씨가 암 진단을 받기 몇년 전,
애지중지하던 그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큰 비극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신적충격이 큰 스트레스로 그의 몸에 다가와서 면역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려서 폐암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현대의학은
인간을 정신과 신체를 통합해서 하는치유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오래 전에
이 원리를 말씀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영이 살아나면
기쁨이 회복되면서 얼굴이 밝아지고 힘이 생기며..
몸이 건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영이 약해 있어서 마음이 무너져 있게 되면은
몸에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질병이 생기는 것은 몸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신호입니다.
“지금 네 삶의 균형이 깨졌다. 나에게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확실히 병 낫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가르쳐 주신 그 네 가지의 단계적인 방법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 병이 나을 것을 말하라.
마가복음 5장 2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인이 말하기를 만일 내가 그분의 옷만 만져도 낫게 되리라고 함이라.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말하였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렇게 이 여인은 병이 나을 것을 말했습니다.
환상 속에서 예수님은 케네스 하긴 목사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자기 자신이 말하는 것에 따라 그대로 받을 것이다.
혈루병 앓은 여인은 긍정적인 말 대신에 부정적인 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그녀는 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가봐도 소용없을 거야.
나는 너무 오랫동안 고생을 했어.
12년간이나 앓았고 유명한 의사들도 고치질 못했는데
내 재산은 의사들한테 모두 다 써버렸지만 나는 낫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잖아.
나는 살 소망이 없어. 죽는 게 낫겠어.’
만일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면 그 말한대로 그 여자가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여인은 긍정적인 말을 했다.
‘만일 내가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게 되리라’고 말했다.”
두 번째 단계. 행동하라.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만일 내가 그의 옷이라도 만져도”라고 말하면서
그녀가 이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는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세 번째 단계. 받아라.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리고 받는 겁니다.
마가복음 5장 29절에서
그러자 즉시 피의 유출이 마르고 자기가 그 병에서 나은 것을 몸으로 느끼더라.
예수님은 ‘내 능력이 내 몸에서 나간 것을 느꼈다, 누가 나의 옷을 만졌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는 것과 행동을 하였기에 느낌과 치유가 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하기 전에 바로 느낌과 치유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는 것과 행동을 먼저 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치유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네 번째 단계 전하라.
그 여인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많은 간증을 들어왔지만
이렇게 대단한 믿음을 가진 권사님은 본적이 없습니다.
이분이 교통사고를 당해가지고 병원에 9개월이나 입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왼쪽발목에 쇠막대기를 박았습니다.
그런데 왼쪽발이 7cm나 오른발보다 더 짧아서 절뚝절뚝 하면서 걸어 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이 자기 담임목사인 조용기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려고 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내 이 왼쪽다리 길어질줄 믿으니 안수기도좀 해주세요!”
그러자 이 조목사님이 생각하기를
“보통병은 기도하면 길어지지만 쇠막대기가 어떻게 길어지노
쇠를 박았는데!”
그런데도 이 권사님은 목사님이 안수하면 낫는다고 생각해서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달래는데
“권사님 그냥 뼈는 자랄는지 모르겠지만 쇠막대기는 안 자랍니다. 뼈를 잘라내고 쇠를 박았는데 권사님 그냥 지내세요!”
“아니요! 목사님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이 쇠막대기를 왜 못 자라게 하십니까?”
그렇게 말을 하니까 할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어서 기도를 해주기는 해주는데 틀림없이 쇠막대기는 안 자란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 권사님의 마음을 위로하사 혹시 안 낫더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들은 권사님이
“목사님 기도를 어떻게 그런식으로 하십니까?
낫는다고 기도를 해야지 안 나을 것을 기도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권사님 나는 도저히 쇠가 길어지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이 쇠가 길어질 것을 믿고 11년을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에 예배를 드리고 조용기 목사님이 갑자기
어떤 사람의 짧은 다리가 길어지는 환상이 보여서 선포하기를
“오늘 다리가 짧은 사람이 왔는데 주님이 그 다리를 길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은 그 교회 본 성전에서 예배를 본 것도 아니고
지성전에서 텔레비를 통해서 예배를 보다가 그 얘기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그렇게 병이 나은 사람이 일어나서 “할렐루야”를 하는 것입니다.
“내 병은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보고 있던 사람이 다 웃습니다.
왜 웃었냐 하면은 쇠막대기 박은 것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어디 나았는가 한번 보십시다.”
그런데 또 절뚝 절뚝 나가는 겁니다.
“권사님 어디 나았어요!” —
“아니 마음으로 나았어! 육신은 절뚝 거리지만 내 마음으로는 나았어—“
집에 가서도 자식들을 보고
“오늘 목사님이 짧은 다리 나았다고 해서 나는 나았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어머니 때문에 우리 창피해서 교회도 못나겠어요 지금도 절뚝절뚝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얘들아 왜 현실을 보느냐?
믿음으로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변화시켜줄것 아니냐?
나는 나았다니까?—“
“아이고 어머니 제발 주책 좀 떨지 마세요!—“
그래 가지고 하루를 지나도 절뚝, 이틀을 지나도 절뚝,
일주일이 지나도 절뚝거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온 집안 식구들이
“어머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라고”
그런데 9일째 되는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마침내 다리가 길어지고 말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쇠다리가 길어져서 오른쪽 다리와 같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는데 조금도 절뚝거리지 않고 다닌다는 겁니다.
조용기 목사님도 도무지 믿음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 권사님은 놀랍게 믿고 또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병이 걸렸을 때
‘이런 병도 주님이 과연 고치시겠는가?
의사들도 이 병은 못고친다고 말했다.
불치병이라고 했다.’
이렇게 의심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 1:3-4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신데 그 창조자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으로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예수님의 치료가 오늘날도 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라고 하시며 우리의 몸을 치유해주십니다.
곧 이어서 성찬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몸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육의 질서가 회복될 때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치유의 근원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대신 지셨고
우리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성찬은 치유가 나타나며 우리가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우리 중에 마음이 아픈 분이 있으십니까?
혹시 영이 지쳐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혹시 몸이 약해진 분이 있으십니까?
오늘 이 시간
믿음으로 주님께 나와서 주님의 살과 피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에게 생명이 됩니다.
우리에게 회복이 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우리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돌아 보겠습니다.
(잠시 눈 감고 회개와 성찰의 기도)
주님!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옵소서
우리의 몸에도 주님의 생명이 흐르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제 떡을 받겠습니다.
찬송가 아무 흠도 없고 1,2절
이 떡은
우리 죄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다 함께 떡을 들겠습니다.
(떡을 나눈 후)
이제 잔을 받겠습니다. 3, 4절을 하시면서
이 잔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 피로 우리는 용서받았고
이 피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 같이 잔을 들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5,6절을 하므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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