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
1초도 쉬지 않고 말씀을 중얼중얼거리는 복있는 사람
우리의 내면은 결코 비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루 종일 수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어떤 생각은 우리를 평안으로 이끌고,
어떤 생각은 우리를 두려움과 낙심으로 끌고 갑니다.
시편 1편은 바로 이 내면의전쟁을 다루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여기서 ‘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생각 속으로 계속 밀려오는 유혹의 음성입니다.
마귀의 공격은 생각으로 시작됩니다.
갑자기 밀려오는 염려…
이유 없이 커지는 두려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정죄감….
은근히 타협하게 만드는 유혹…
이렇게 우리 생각 속으로 마귀의 음성은 조용히 스미어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넋놓고 가만히 있으면 이렇게 조용히 스미어 드는 음성들에게 우리는 당하는데 나도 모르게 거기에 따라가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 음성을 ‘따르지 아니하고’
우리들이 여기서 무너집니다.
생각은 항상 누구에게나 들어옵니다.
그런데 영적 전투의 첫 번째 승리는 이렇게 생각이 들어왔을 때
바로 그것을 분별해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큰 사건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기 보다
아주 작은 생각 하나로 우리에게 들어와서 서서히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 생각이 들어왔을 때 바로 그 마귀의 생각을 차단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복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묵상입니다.
히브리어 원어 하가(hagah)의본래 의미는
중얼거리다….낮게 읊조리다….계속 되뇌이다…..
입으로 반복하다.
입은 우리 생각의 관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음에 들리는 소리’에 의해 지배되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계속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죽게 됐다.”
“애굽이 더 좋았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이런 말이 자기의 마음에 계속 들려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마귀의 꾀에 넘어가게 되었던 겁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며 마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가나안 정복의 주역이 되며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사용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면에 계속 들려줘야 합니다.
요셉은 원래 아버지의 품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다가 형들의 시기로 그는 애굽에 팔려가게 되어서
애굽에 있는 보디발장군의 집에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상황 속에 있는 요셉의 처지가 되었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마음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고
초죽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자기의 마음이 난장판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굳건하게 마음을 잘 지켜내며 잘 살았습니다.
어떻게 요셉이 잘 살았느냐?
이 보디발 장군의 눈에 유난히 요셉이 보일 정도로 잘 살았습니다.
보디발장군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장군이 귀족도 아닌 성공한 사람도 아닌 요셉을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겠습니까?
보디발이 요셉이라는 종을 보고
‘제는 정말 복을 받았구나!
어떻게 저렇게 복을 받은 사람이 우리집에까지 오게 되었는가?”
이렇게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제는 유대에서 온 녀석인데 하나님을 믿습니다. ”
이렇게 주변에서 보디발에게 요셉에 대해서 말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그렇게 요셉은 보디발의 눈에 띄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장군은 요셉을 종에서 신분상승시켜서
가정의 총무로 일하게 했습니다.
집안 일체를 맡기고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요셉 때문에 보디발장군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보디발장군은 그런 사실을 알고 더욱 더 요셉을 신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요셉은 태어나면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데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자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형들이 나에게 절을 하며 살게 될거야!”라며 꿈많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꿈의 예상과는 반대로 인생이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기나라의 종도 아니고 남의 나라 종이 되었으니
종들에게도 천대를 받게 되는 가장 낮은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귀족같이 살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남의 나라의 종이 되었을 때 보통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처한 상황에서 요셉의 내면세계는 어떻게 요동을 쳤겠습니까?
많은 악한 영들의 소리가
악인의 꾀가 그의 내면에 넘실거리며
그를 괴롭히며 속삭거렸습니다.
자기 현실을 비관하고 한탄하고 포기하고
주는 밥만 먹고 시키는 일만 간신히 마지 못해 하고
좀 더 나아가서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라는
마귀의 생각이
그의 마음안에 들어왔을 겁니다.
이 때 우리는 이 마귀가 던져 준 생각과
나라는 존재를 분리해서 대처해야 합니다.
마귀는 교묘하게 3인칭이 아닌 **1인칭(‘나’)**으로 속삭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많이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렇게 두렵지!”
“나는 저 사람하는 게 밉지”
“나는 실패자야”라는 식으로 생각을 넣어주기에
이때 우리는 그 목소리를 **’나의 자아’**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노림수입니다.
그 때 ‘나는 쓸모없어’라고 말하지 말고,
**’마귀가 나에게 쓸모없다는 생각을 던지고 있구나’**라고 분별하는 겁니다.
내 안에는 마귀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의생각이 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다”라는 1인칭의 진짜 음성에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이렇게 마귀의 음성이 지속적으로 들리고 거기에 속아넘어간채로 살아가며…
이런 악령의 교묘한 생각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숨이 막히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때문에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마귀의 생각, 악인의 꾀로…
요셉이 이 괴로움을 가지고 일을 하면 일이 잘되었겠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요셉이 보디발장군의 눈에 띄였겠습니까?
요셉은 결코 그렇게 마음에 원한과 한숨과 자포자기가 자기의 마음에 방치되지 않게 했습니다.
물론 요셉의 내면에도 악인의 꾀가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들렸는데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요셉이 1초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빛이 되셔서
그에게 들어오는 모든 어둠의 마귀의 생각은 다 사라지며
생명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
복있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이 악인의 꾀는 늘 들려오지만
복 있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생각을 중얼중얼 하므로
하나님의 생각이 넘쳐나므로 악인의 생각은 사라지며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갑니다.
절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이 충만하므로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이사야 59:21,“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의 입에서 우리 후손의 입에서 우리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아니하시겠다고
그래야 너희들이 마귀의 꾀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9:21 다음 구절이 바로 60장입니다.
이사야 60:1-3,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을 때
우리 입에 있는 말씀이
우리의 생각으로 흘러들어오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각이 가득 들어차 있는 그 때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빛이 임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즉 말씀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찬 그 사람에게는 빛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빛이 발하라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더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임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입을 통해서 우리 생각으로 흘러들와서
우리 내면을 채우므로 우리에게 이 빛이 임하고 영광이 임하므로
우리 삶으로 순종하는 것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그 빛을 향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중얼중얼 거린대로 행하므로
우리속에서 빛을 발하게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말씀… 하나님의 생각으로 중얼중얼 했으면 그 중얼거린대로 우리의 생각속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행함을 통해서 이 빛이 발산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요셉이 종노릇 할 때
1초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는 생각하기를
“비록 나는 종이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곳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있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하자.”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의 빛이 임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던 겁니다.
그래서 요셉은 종으로서
하찮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식기닦고, 청소하고, 물기르고 하는 이런 허드렛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데
그는 대충하지 않았습니다.
남일 하듯이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성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빛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빛나는 행동이 주인 보디발장군의 눈에 띄이게 되었던 겁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이 맡은 일은 다 빛나게 행동하니까 전옥이 그에게 감옥일을 맡겼습니다.
훗날 요셉은 나라의 총리일도 빛나게 잘 하니까
아예 애굽 왕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버렸습니다.
그만큼 왕의 눈에도 띄였던 총리였습니다.
빛이 나게 하는 행동을 하였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신데 이 빛을 내 생각에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 우리가 1초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얼중얼 거릴 때
정말 자기에게 은혜가 되는 복음성가 가사를 따라 부르며 외우시는 것도 좋은 묵상이 됩니다.
그래서 마귀의 생각은 우리의 이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기에 발을 못 붙이며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에베소서 6장의 영적전투에서
믿는 우리들이 전신갑주를 취하고 나가는데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다 방어적인 무기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말씀은 ‘성령의 검’ 즉 유일한 공격형무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안에 있는 잔존해 있는 마귀의 생각들을 베어버리며 없애줍니다.
찬송가를 힘있게 부를 때에도 마귀의 생각들은 다 도망가버립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예를 들어 건강 염려, 자녀 문제, 재정 걱정, 미래 불안때문에
마귀의 생각이
“큰일 날 거야.”
“망할 거야!”라고 하며 생각을 집어 넣어주려고 할 때
이때 성령의 검인 말씀을 사용하는 겁니다.
성령의 검 사용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나에게 오는 두려움은 떠나가라” 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마음을 흔드는 두려움의 영아,
너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당장 내게서 떠나가라!”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런 말씀을 반복해서 선포하면:
두려움이 약해집니다.
생각으로 하는 것보다 입술로 선포하면 훨씬 강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의 검으로 한 번 휘둘러도 없어지지 않을 때는
3번 7번 계속 반복 선포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 하신 후에
예수님의 가장 치명적인 육신적인 약점은 배고픔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돌을 떡으로 해서 먹지 왜 그러고 있냐?”
그 때 예수님께서는 바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라고 신명기 8:3에 있는 말씀을 마귀를 향해 선포했습니다.
두 번째에도 세번째도 다 성경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성령의 검으로 그들의 생각을 다 칼로 베어버리니까…
마귀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안에 어떤 마귀의 두렵게 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우리안에 어떤 마귀의 달콤하게 유혹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성경을 늘 중얼 중얼 거리다가
마귀가 우리에게 생각으로 다가올 때
예수님처럼 우리도 말씀을 선포해서
마귀의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십시다.
**우리안에는 늘 마귀의 생각,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이
서로 상존하면서 충돌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전쟁터입니다.
전쟁은 상대방 영토를 침입하면서 시작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이라는 영토를 침입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각의 불화살’**을 우리에게 쏩니다.
마귀는 특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유혹이나 우리의 취약한 점을 들먹거리며 “너는 끝났어!”라는 생각의 불화살을 쏩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는 말씀처럼,
이렇게 생각은 전쟁의 첫 번째 공격의 신호탄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로 생령의 검인 말씀으로 이 생각을 즉시 베어내지 않으면, 생각은 마음의 뿌리로 내려가며
그 생각은 마음속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견고한 진’이라고 합니다.
이 견고한 진을 구축한 다음에
마귀의 생각은 점점 우리를 더 난폭하게 무자비하게
나를 이리 저리 끌고다니며
나를 힘들게 하며 난장판으로 삶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
1초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중얼중얼 자기 자신에게 계속 듣게 해서
마귀의 공격을 솎아내며
복 있는 사람으로 형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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