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음성 요한복음 10:26-27
어느 부활절 아침 한 젊은 여성도가 특송으로 은혜롭게 찬양을
합니다.
가사내용이 이렇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시도다.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살아계시도다.
그는 나와 함께 걸으시며,
나와 함께 말씀하시며,
내 인생의 좁은 길을 함께 하시는도다.”
이런 찬송의 가사를 들은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가 끝났는데 어느 나이든 권사님이
오늘 특송을 멋지게 부른 그 젊은 여성에게 찾아가서
“오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가씨…
주님과 오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무슨 이야기요?—
“오늘 주님과 대화를 했을 것 아니겠어요?
주님께서 아가씨에게 무슨 말씀을 했어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 예수님과 가장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셨을 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구요?”
—뭐라고요? 제가 예수님과 대화를 해요?
권사님!!
예수님은 제게 말씀하지 않았어요…
권사님 조심하세요..
만약 예수님이 권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건 단지 권사님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탄의 장난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말씀을 읽으며 말씀에 따라서만 살아야 해요!—
“ 그래요 그런데 아가씨는 아까 예배시간에 특송할 때
‘그분이 나와 함께 걸으시며 나와 함께 말씀하신다네…’라고 찬양하였지 않아요?”
—예 하지만 그건 그저 찬양가사일뿐이예요… —-
“그렇다면 왜 그런 찬양을 하였어요?”
—글쎄요 그냥 그런 찬송이 찬양집에 있어서 찬양 했을뿐이죠!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주 믿음이 좋거나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듣는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그것은 모세나 사무엘 같은 사람이나 듣는 것이지 기도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목사들이나 듣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은 못 듣는다고 생각을 하는 오해입니다.
두 번째 오해는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음성을 들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면 성경을 보면 되고
괜히 성경에 없는 음성을 들으려다가 잘못 된다는 것입니다.
들을만한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에 이미 다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오해는 하나님의 음성이 왜 그렇게 필요하냐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그 자유의지안에서 스스로 결단하고 살면 되는 것이지…
왜 매일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느냐…
그래도 만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성경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과연 그렇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으며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살아가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교제를 하며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매뉴얼북(지침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하게 영으로 대화를 하며 깊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며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사귀고 싶어하십니다.
우리 사람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은 우리 몸이고
혼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이 혼입니다.
그래서 혼과 육은 쉽게 알겠는데…
마지막으로 영은 어떻습니까?
영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의식할 수 있는…. 가장 깊숙이 있는 것중에
1. 하나는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우리 다 양심의 깊은 소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심은 영의 한 부분입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옳다”
도덕적으로 감지를 합니다.
로마서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2. 영적 직관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알게 되는 내적 인식’**입니다.
논리로 계산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시는 즉각적인깨달음입니다.
3. 마음(심령)의 감동 (Inner prompting)입니다.
“이 사람에게 연락해라”
“지금 멈춰라”
“이 길로 가라”
생각으로 오지만…단순한 다른 생각과는 다른 ‘힘’이 있습니다.
4. 평강 또는 불편함 (Inner peace / check)
성령의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맞는 길 → 깊은 평안….
아닌 길 → 설명 안 되는 불편함
5. 생각 속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처럼 들어오는 경우…
갑자기 방향이 분명해지며 기도 중에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6. 깊은 확신 (Inner conviction)
설명은 안 되는데
“이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한 내적 확신…
흔들리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도 이 확신은 계속 유지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시며 친밀한 관계속에 있으면
우리 영에서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청명하게 잘 들리게 됩니다.
**기도를 처음 하기전에는
영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동안 세상 욕심으로 때가 끼여 있어서 영이 많이 더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므로 죄를 회개하고 욕심을 걷어내므로 영이 깨끗해지며 성령이 충만해지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생각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은 영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는 혼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방을 보니 걱정할 것 밖에 안 보이며 힘든 것만 보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므로
혼의 영역에 낮게 머무르지 말고…
비행기가 구름위를 뛰어넘어서 태양을 보는 것 처럼…
영의 영역으로 높이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사방이 불가능의 구름으로 덮여 있을 때
눈을 감고 영으로 혼의 영역을 빠져 나와서
감사기도와 찬양기도로 영의 영역으로 올라가면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므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기도와 찬양기도로 영의 영역으로 올라가면서
내 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 음성은 때로는 나를 책망하기도 하고 나를 변호하지 않습니다.
추상같이 엄중하게 나를 꾸짖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나에게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모든 것이 끝장 난 상황이라고 생각되어질 때
“새로운 시작이다..
다시 일어서라 빛을 비추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하나님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칠흑같이 어두우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에
비행기가 공항에 내릴 때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관제탑에서 건네주는 음성을 듣고 무사히 잘 내리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늘에서 건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원의 공항에 무사히 착륙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이전에 읽었던 성경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시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하라는 것을 지시해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살아가야 살 수 있습니다.
**마4: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고
지금도 하나님의 입에서 계속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살아나게 됩니다.
밥을 날마다 먹듯이, 하나님의 음성도 날마다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에게 와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떡으로 물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과거에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아침에 만나를 얻기 위해서 광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영적인 만나를 얻기 위해서,
즉,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얻기 위해서
기도의 처소로 나가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직접 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가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 하옵소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옵소서.’
하면 주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기도할 때 내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 내용은
특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야 합니다.
이 기도내용이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기도란 하나님아버지께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끝마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내가 기도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 영안에 하나님의 의식이 더욱 더 강해지고 또렷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내 기도를 타고 분명하게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한 내용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기 때문에…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지만
바로 그것이 바로 지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많은 구절들….
다윗이 기도한 내용, 모세가 기도한 내용,
다른 시편기자들이 기도한 것,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지어놓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 내용들이…
성경말씀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기도가 다윗과 모세, 솔로몬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인 겁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께
“이럴 때 어떻게 하지요?
저럴 때에는 어떻게 하지요?”라고 물어야 하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사업의 중요한 일을 놓고 결정해야 할 때…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말 한마디 하기 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주님, 어떻게 할까요?”
묻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길을 보여주십니다.
마10:19~20절에서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밖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귀로 들리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영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말씀하십니다.
화가 나서 어떤 사람에게 따지는 문자를 보내려 합니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보내려고 하는데 내 안에서 조용히
“지금 보내지 마라.” 이유는 모르지만 잠시 멈춥니다.
다음 날이 되어서 보니까 그 문자를 보냈다면
큰 다툼이 되었을 상황이었습니다.
작년 노회때에 제가 어떤 오래된 노회원이 부당하게 제명이 되어서 그분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안을 내었고 반대쪽에서 다시 입회원서를 받아야 된다는 안건을 가지고 서로 표대결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나왔는데 20:10으로 형편없이 부결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 때 제가 “에이 이렇게도 사람들이 내 진심을 몰라주는구나….”
그러고 제가 표결이 끝난 직후에 실망이 되기도 하고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와 집으로 바로 돌아오려고 차를 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집에 가지 마라!
정신 차려서 다시 들어가서 회의가 완전히 종료된 후에 가도록
해라”
흥분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 말씀을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서…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와서 회의를 끝내고 다 인사하고 그렇게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는데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 다음날 반대편 의견을 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승복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제가 오히려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억울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깨달은 것은….
아 그 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순종했구나!
내가 보아도 대견한 겁니다.
지금은 전화위복이 되어서 다 잘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을 때…
어느 날 사울이 다윗이 숨어 있던 동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부하들이
“오늘 하나님이 원수를 손에 붙이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원수를 제거할 순간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몰래 가서 사울의 옷자락을 벱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윗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윗아, 거기까지다.”
“그를 손대지 마라.”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다.”
아무도 그 말을 귀로 들은 음성이 아니지만
다윗은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원수인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멈춥니다.
성령은 지금도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 하지 마라.”
“지금 멈춰라.”
“이 길로 가라.”
“저 사람에게 전화해라.”
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영으로 양심으로 감동으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그 음성에 순종했고…
결국 자기 손으로 직접 왕좌를 빼앗지 않았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은 우리를 보호하고 막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므로 목자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양은 처음부터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목자가 매일 부르고, 먹이고, 인도하면서
양은 점점 그 음성을 기억하게 됩니다.
반복된 관계 속에서 음성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들어야 살 수 있고 남도 살릴 수가 있습니다.
1873년 11월 22일,
뉴욕을 향해 가던 영국 화물선 로크 애른호는 대서양 한복판에서
프랑스 호화 여객선 빌 뒤 아브르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여객선은 불과 12분 만에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고,
로크 애른호 역시 배 앞부분이 처참하게 부서져 나갔습니다.
로크 애른호는 침몰해가는 여객선의 생존자들을 구조하였습니다.
그런데 로크애른호도 배가 심하게 부서졌기 때문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선장은 더 이상 배를 지탱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모든 승객과 선원들에게
“앞으로 24시간 내에 배가 완전히 침몰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상황을 발표했습니다.
아침이 되며 물은 승객들의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곧 배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대서양 한 가운데 물에 빠져죽을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쿡이라는 기도 많이 하시는 목사 한 분이 승객으로 같이 타고 있었는데…
쿡 목사는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다른 승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구조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브리티시 퀸호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구조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브리티시 퀸호의 선장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를 구조해야 한다” 감동을 받기 시작하며 계속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북쪽으로 선회하라.”
그는 그 배를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최고 속력으로 밤새 달리라고 항해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동이 틀 무렵, 망을 보던 선원이 “앞에 배가 보인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곳에 가보니까 로크 에른호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라앉고 있는 배에 다가가서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조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선장 한사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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